드라마/예능/육룡이나르샤

척준경일화 척사광 마인참 육룡이 나르샤 35회 줄거리

조원태 2016. 2. 2. 01:35
반응형

척준경일화 척사광 마인참 육룡이 나르샤 35회 줄거리



척준경은 고려시대에 실존하는 무신입니다. 


숙종 9년때 평장사 임간을 따라 동여진을 정벌하였는데,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 부탁해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얻은 다음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명을 되찾았다. 그런 뒤 교위 준민, 덕린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한명씩을 꺼꾸러뜨리자 적들이 약간 물러났다. 척준경이 퇴각하는데 적 1백기가 추격해오자 또 다시 대상 인점과 함께 적장 두명을 사살했다. 적들이 전진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이 공으로 천우위 녹사참군사벼슬을 받았다.


이 당시 척준경의 검술은 그야 말로 대적할 사람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에 삼국지를 보면 여포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여포가 싸움을 얼마나 잘했는지 유비, 관우, 장비가 한꺼번에 덤벼도 그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포가 유명해진것은 난세이기 때문입니다. 동탁을 죽이고 자신이 조그만한 땅을 차지해 군주가 되었죠.  진궁이 아니였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해요. 


아무리 여포가 싸움을 잘했다고 해도 성을 함락해 알박이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역사속에 몇줄 나오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척준경은 뛰어난 무사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이렇게 뛰어난 무사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윤관의 기록에서


척준경은 범을 빼어닮은 얼궁에 용력이 출중했고 숙종이 즉위하기 전에 계림공 시절 휘하에 있었다. 인물됨이 호방하고 호탕하여 친구 사귀기를 꺼리지 않았으며 술자리에서는 누구나 그와 가까이 하고 싶어 했다. 


척준경 일화

국경선까지 남진한 여진족들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서 임간을 파견했다가 

임간이 대패하여 군진이 무너졌을 때 당시 중추원별가였던

척준경이 홀로 말을 타고 돌격하여 여진 선봉장을 참살하고 포로로 잡힌 고려군 200명을 빼앗아 왔다. 


윤관의 여진 정벌 당시, 여진족이 석성에 웅거하여 별무반의 앞길을 가로막자

윤관이 전전긍긍하였다. 이에 부관이었던 척준경이 이르기를

' 신에게 보졸의 갑옷과 방패하나만 주시면 성문을 열어 보겠나이다 ' 라고 호언하였다.

척준경이 석성 아래로 가서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성벽으로 올라가 추장과 장군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성문을 열어 고려군이 성을 함락하였다



윤관과 오연총이 8천의 군사를 이끌고 협곡을 지나다가 5만에 달하는 여진족의 기습에 

고려군이 다 무너져 겨우 1000여 명만 남았고, 오연총도 화살에 맞아 포위된 위급한 상황에 

척준경이 즉시 100여기의 병력을 이끌고 달려왔다.

우뢰와같은 기합과 함께 100여기의 기병과 여진족의 후미를 돌파하기 시작하였다.

척준경은 단숨에 여진족 부관 10여명을 참살하고 적장을 활로 쏘아 거꾸러 뜨렸다. 

척준경과 10명의 용사들이 분투하여 최홍정과 이관진이 구원하고 윤관은 목숨을 건졌다. 


여진족 보병과 기병 2만이 영주성 남쪽에 나타나 고려군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윤관과 임언이 방어만 하려고 하자, 척준경은 단호히 반대하고 나섰다. 

척준경이 결사대 100기를 이끌고 성을 나가 분전하여 적의 선봉장을 참살하고 적들을 

패주시켰다. 


척사광은 이성계가 타고 있는 줄 알고 가마를 1합에 베어버립니다. 그것은 곡산검법 마인참인데 척준경이 적장을 죽일때 1합으로 말과 장수를 한꺼번에 베었다고 합니다. 


척준경의 일화를 보면 진실이라면 척준경은 무신으로써는 당대최고 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사하면 여포를 뽑곤 해요. 여포는 지략을 쓸 줄 모르고 힘만 센 장수로 알고 있죠.


척준경도 싸움은 무지 잘 하는데 지략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척준경은 이자겸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침범하여 불을 질렀습니다. 인종에 타이름에 설득 된 후 척준경은 이자겸과 사이가 나빠지자 그를 유배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다가 인종의 미움을 받고 곡주로 이배되기도 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