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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 이성계 만남 육룡이 나르샤 35회 줄거리

조원태 2016. 2. 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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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 이성계 만남 육룡이 나르샤 35회 줄거리


이지란은 여진족 출신이고 이름은 퉁두란으로써 공민왕때 고려로 귀화 한 후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이씨 성과 청해 본관을 얻었습니다. 


원나라가 망하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운 후 고려로 귀화 했습니다.



이지란과 정몽주에 대화


정몽주는 이성계집으로 문병을 가게 됩니다. 말만 문병이지 이성계에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온것입니다. 정몽주는 이지란에게 이성계를 뵈게해달라고 하지만 이지란은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형님인 이성계를 복수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지란은 이성계가 정몽주를 생각하는 마음을 알고 있기에 정몽주에게 어떠한 나쁜짓도 하지 못합니다. 이 만큼 이지란은 이성계를 형님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지란도 천하의 절세 무사이지만 이성계의 무사 본능에 감탄했습니다. 


고려 우와 때 활 쏘기 대회에 이성계와 이지란이 참여를 했는데 이성계가 번번이 일등을 하자 이지란은 그의 활실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이지란의 일화로는 

태조실록》(太祖實錄) 총서에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한 틈을 타 이성계의 측근이자 참모인 정도전, 조준 등을 투옥하고 제거하려는 정몽주(鄭夢周)를 암살할 것을 명하는 이방원(훗날의 조선 태종)에게 "이건 우리 공(이성계)께서 알지 못하는 일이니 나는 가담하지 않겠다"며 사양했다. 그러나 훗날 이방원이 정도전 및 자신의 두 이복동생을 제거하고 결과적으로 아버지 태조의 퇴위를 이끌어낸 무인정사(1차 왕자의 난)에서 이지란은 이방원측에 가담, 정사공신(定社功臣)의 반열에 올랐다.



자신보다 네 살 어린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그를 형으로써 모셨으며, 무장 시절 이성계를 따라 황산대첩 등 여러 싸움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는 태조 이성계가 이지란을 가리켜 "두란의 말 달리고 사냥하는 재주야 그만한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싸움에 임해 적군을 무찌르는 데는 두란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평가한 대목이 있다.



《용비어천가》에는 또, 일찍이 이성계와 함께 말을 달려 사슴 한 마리를 쫓는데 사슴이 넘어진 나무 밑으로 빠져나가 달아나는데, 이지란은 말을 채찍질하여 나무를 돌아갔는데, 태조는 그 자리에서 몸만 뛰어 나무 위를 넘어 나무 아래로 나온 말을 도로 잡아타고 사슴을 따라가 쏘아 잡았고, 이지란은 "공은 천재이니, 인력으로 따를 수 없소."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인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에는 이성계와의 일화가 실려 있는데, 길에서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는 아낙을 보고 이성계가 먼저 철환(鐵丸)을 던져 구멍을 뚫어 놓자 물이 미처 새어 나오기 전에 이지란이 다시 조그맣게 뭉친 진흙을 던져서 그 구멍을 막았다고 한다. 또한 평소 은근히 이성계를 해치려는 마음을 품었던 이지란은 밤에 이성계가 뒷간에 간 틈을 노려 세 번이나 활을 쏘았고, 이성계가 이 화살에 맞아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성계는 태연하게 뒷간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와서 이지란에게 화살을 돌려주었고, 이지란은 그 뒤로 다시는 이성계에게 함부로 맞설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황산대첩 당시 왜구의 지휘관 아지발도를 칠 때, 왜구와의 교전이 한창이던 때에 창을 든 왜병 한 명이 이성계에게 몰래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 "영공, 뒤를 보십시오"하고 거듭 외쳤지만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이성계가 미처 듣지 못하자, 이지란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몸소 활을 쏘아 이성계를 찌르려던 그 왜병을 죽였다. 또한 온몸에 갑옷을 두른 아지발도를 죽이기 위해 이성계가 먼저 화살을 쏘아 아지발도가 쓴 투구 꼭대기를 맞혀 투구를 벗겨내고, 아지발도의 투구가 벗겨진 틈에 이지란이 다시 활을 쏘아서 아지발도를 죽일 수 있었다고 한다.


영조 50년(1774년)에 세워진 《이지란신도비》에는, 이지란이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게 된 내막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지정 연간에 이성계가 고광성을 칠 때, 이성계의 어머니 최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개강(价江)에 활을 잘 쏘는 자가 있어 패왕(覇王)을 보필할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이성계가 그 꿈대로 개강에 가 보니 마침 퉁두란(이지란)이 그곳에서 사슴 사냥을 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그와 형제의 의를 맺고 아내 강씨(康氏, 신덕왕후)의 종녀(從女)와 혼인시켰다고 한다.


또한 《이지란신도비》에는 우왕이 서쪽으로 사냥을 나와 대령(大寧)에 이르렀을 때, 무신(武臣)들에게 백금(白金) 2촌(寸)을 과녁으로 삼아 활을 쏘게 하였는데, 이성계가 나서서 활을 쏘아 한 발에 과녁을 맞히자 우왕은 기뻐하였으나, 이지란은 "재주의 아름다움을 어찌하여 남에게 많이 보이십니까."라며 넌지시 꼬집었고, 이성계는 뉘우치고 더욱 공의 지혜에 탄복하였다는 일화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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